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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사업의 절정에서 가슴 속 뭔가가 꿈틀댔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21〉비즈니스맨에서 정치인 변신   신생도시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출마 결심 아무리 뛰어도 반응 냉랭…승리 나도 놀라 1977년에 회사 ‘제이킴 엔지니어스’를 설립했다. 상·하수처리장 등 도시개발 프로젝트 설계 회사였다. 중소기업청에서 지원 받은 10만 달러에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을 합쳐 다이아몬드바에 사무실을 열었다.     직원은 파트타임 비서 한 명 뿐이었다. 낮에는 사업계약을 따내느라 동분서주하고 밤이면 주문받은 설계를 하느라 도면과 싸웠다. 다행히 일거리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서부 6개 주에서 일할 수 있는 면허증을 얻은 덕이었다. 나중에는 혼자서 일감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설계 직원을 더 채용했다. 시간이 지나니 고용할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어느새 15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컸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나만의 경영 전략을 세웠다. 첫째, 미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린다. 둘째, 미국 사회의 관습과 불문율을 기억한다. 셋째, 어떤 경우라도 경영자와 사원의 경계선을 지킨다. 넷째, 사원 모두가 내 회사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애를 쓴다.     제이킴 엔지니어스는 설립 10년 만에 연 매출 1000만 달러를 올릴 정도로 급성장했다. 캘리포니아 500대 설계회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서부지역에만 여덟 군데에 지사를 설립했다. 도시개발 전문가로 인정받으면서 LA타임스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나를 소개했다. 여기저기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 한켠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직 욕심이 생겼다. 2년 동안 이웃 도시인 샌디마스의 도시계획자문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바로 왔다. 신흥 도시인 다이아몬드바의 두 번째 시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초대 시의원 3명 중 한 사람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가슴이 뛰었다. 마치 나를 위해 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런데 ‘내 주제에 무슨 시의원 선거 출마냐’는 생각도 바로 엄습했다. 기대와 함께 괴로운 마음이 오버랩 됐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선거 출마를 놓고 고심했다.     설계 책상 위에 A4용지를 펼쳐 놓고 펜을 들었다. 종이 반을 접어 한쪽엔 ‘유리한 점’ 다른 한쪽엔 ‘불리한 점’이라고 썼다.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나의 장단점도 써내려갔다. 불리한 점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출마 결심을 하니까 머리가 말끔해졌다. 다이아몬드바 시에 대해 공부했다. 지역도서관에 가서 시의 역사와 주민 분포, 재정 상태 등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인구 8만 정도의 다이아몬드바는 독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생도시였다. 도시가 새로 생기면 보통 4년 안에 도시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세운다. 마침 시의원 선거 출마 시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으로 다이아몬드바 시를 짓고 허물고를 반복했다.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나를 알리는 게 가장 중요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주민의 85%가 백인인 이 도시가 과연 아시안을 대표로 선출할까. 속으로 여러 번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선거 기간 중 토론이 8차례 있었다. 최대한 쉬운 말로, 단순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정부와 개인기업이 공조해서 작지만, 효율 높은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의 세금 부담을 확실히 덜어드리겠습니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해 온 저의 경험과 노하우로 가장 합리적이며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이민자인 내가 변호사 출신인 다른 후보들을 토론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다. ‘단순하라.’ 그런데 주민들이 나를 주목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역 언론 기자들도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인터뷰 기회조차 없었다. 선거 전날까지도 그랬다.   이쯤 되니 당선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개표가 시작되니까 괜히 출마했다는 후회감마저 밀려왔다. 그런데 초반부터 충격적인 개표 결과가 나왔다. 개표 결과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2위보다 1000표나 많았다. 밤 11시쯤 승리가 확정됐다. 나보다 놀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당시 미 전역에서 시의원에 출마했던 한인은 3명. 이중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나만 유일하게 당선됐다. 내 신분도 순간 확 변했다. 한인 언론과 한국 특파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어떻게 위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나.’ 이튿날 한인과 한국 언론에 ‘한인·한국 이민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되다’라는 제목의 보도가 잇따랐다. 그날 이후 내 이름 앞에는 ‘최초’ ‘유일’이란 수식어가 계속 따라붙었다.   캘리포니아주의 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LA나 샌프란시스코처럼 큰 도시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시장이 모든 행정을 책임진다. 하지만 대다수 작은 도시들의 시장과 시의원들은 자기 직장이 따로 있다. 이들은 시의회에서 결정권만 쥐고 있으며 시 운영은 시티 매니저에게 맡긴다. 다이아몬드바도 그랬다. 나는 제이킴 엔지니어링을 운영하면서 매주 화요일 시의회에 참석했다.   시의원 임기는 4년이다. 그런데 시의원이 된 지 1년 반 만에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 다이아몬드바 시장은 2년마다 5명의 시의원 중에서 선출한다. 다이아몬드바 시장 선출은 유권자가 아닌, 시의원들 투표로 결정된다. 나는 출마를 결심했다. 이어 또 다른 시의원 3명은 물론 나와 경쟁하려던 시의원까지 설득해 만장일치로 시장에 당선됐다. 시의원에 당선된 지 2년 만이었다. 최초의 한인 시장 당선이었다.   시장이 되고 나서 바빴다. 아침 8시면 집무실로 향했다. 8시부터 9시까지 시장 업무를 본 후에 제이킴 엔지니어링으로 출근했다. 파트타임 시장으로 일하면서 받는 급료는 600달러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봉사활동이었다.   공약대로 나는 작은 정부 만들기를 실행에 옮겼다. 시청사를 지으려던 계획을 없애고 빌딩에 세를 얻어 들어갔다. 시장실도 책상 하나 겨우 놓을 정도로 좁은 방을 빌려 썼다. 시의회도 별도 건물 없이 카운티 환경부 회의실을 임대해 사용했다. 시 공무원 채용도 중단했다. 다이아몬드바와 같은 규모의 시를 운영하려면 통상 150명 정도의 공무원이 필요하다. 나는 파트타임 직원 2명을 포함, 총 24명의 공무원만 채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연 1000만 달러의 예산을 줄였다.   다이아몬드바는 효율적인 재정관리로 흑자를 냈다. 또 경찰서를 두지 않고 매년 LA 카운티 셰리프국과 계약을 맺고 외주를 줬다. 예산 절약에 주민들은 크게 감격했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사업 절정 시의원 출마 시의원 선거 시의원직 욕심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2-01-19

[OC] [11월 선거 출마 한인에게 듣는다-5·끝] 재선도전 강석희 어바인 시장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선거를 치를 겁니다." 11월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강석희 어바인 시장은 인터뷰 내내 충만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2년 동안 시장으로서 쌓아 온 업적을 주민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시장이 된 뒤 매사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처리했다. 덕분에 어바인 비즈니스 콤플렉스 개발과 관련 뉴포트비치와 터스틴 등 인접 도시가 제기했던 4~5년 묵은 소송도 합의로 종결지을 수 있었다. 어바인 시의회는 강 시장과 래리 에이그런 부시장 베스 크롬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세 사람만 뜻을 같이 하면 모든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강 시장은 '3대2' 보다는 '만장일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에이그런 부시장 크롬 의원과의 논쟁도 불사했다. "시장에 취임할 때부터 투명하고 공정한 시정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보를 통해 커뮤니티가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지요." 강 시장의 이같은 노력은 시의회를 중계하는 시영 채널을 통해 많은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주민들을 만나면 '요즘은 시의원들이 싸우는 일이 줄고 회의 시간도 짧아져 시청할 만 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유권자들이 둔감한 것 같아도 시가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고 있어요." 강 시장은 재선을 통해 그 동안 쌓아 온 '클린 정치인'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며 승리할 계획이다. 그는 상대 후보인 크리스토퍼 곤잘레스 변호사를 상대로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같은 전략은 '현직 시장'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선거 자금의 60%를 우편홍보물에 30%는 TV 광고에 쓸 겁니다. 지금까지 시 발전을 위해 기울인 내 노력을 유권자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강 시장의 주위 인사들은 이번 선거가 강 시장의 향후 정치적 입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도시인 어바인의 수장을 도합 4년 동안 지내는 것이 미래에 더 큰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강 시장은 "모든 선거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큰 표차로 승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로 내심 압승을 기대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자신감의 원천은 역시 한인들이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최근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공화당 강세'를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한인 표심이며 든든한 자금줄이기도 한 때문이다. 강 시장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하고 사인을 부탁하는 한인 2세들을 볼 때 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며 "후세들이 자랑스러워 할 정치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0-09-08

[OC] [시의원 출마 한인에게 듣는다-4] 라팔마 스티프 황보 후보

"40년 이민 역사에 걸맞게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2008년에 이어 라팔마 시의원 선거에 재도전하는 스티브 황보 후보는 "오렌지카운티에서 한인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라팔마인데 아직도 한인 시의원 한 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나의 도전이 한인 2세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보 후보는 2년 전에도 한인들의 낮은 목소리를 증폭해 시에 전달하는 메가폰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시가 주최하는 여러 행사를 가 보면 한인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며 만나는 백인들도 '라팔마에 한인이 많이 산다는데 행사장에 오는 한인도 자원봉사를 하는 한인도 보기가 힘드니 어찌된 일이냐'고 합니다. 이젠 변해야 합니다." 그는 각종 시 주최 행사에 가 보면 자원봉사자가 백인 일색이라며 "참여 의식이 부족한 것은 한인 1세뿐이 아니라 1.5 2세들도 매한가지"라고 꼬집었다. 15세에 이민 온 1.5세인 황보 후보는 "자식은 부모를 닮게 마련이므로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출마 동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황보 후보는 유권자들을 만나면 "정치적 야심 때문이 아니라 라팔마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커뮤니티에 기여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말한다. 옥스포드 아카데미 재단 이사장을 7년째 맡고 있고 라팔마시 환경위원회 커미셔너 애너하임통합교육구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 온 그이기에 타인종 유권자들도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황보 후보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와 백인 주민 비즈니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며 자신이 당선되면 라팔마 주민들의 내적 통합을 위해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라팔마 소매업의 상당 부분을 한인이 차지하지만 대부분 한인 상대로만 장사를 합니다. 타인종 비즈니스도 주 고객은 타인종이고요.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누어진 느낌이 들 정도예요." 두 석이 걸린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는 4명이다. 황보 후보와 헨리 차로엔 현 의원 노엘라 류 후보는 아시아계이고 제라드 고다트 후보가 유일한 백인이다. 황보 후보는 "보수층인 라팔마의 백인 유권자 중엔 '백인이 한 명이라도 나와 참 다행'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문제는 이런 시각을 가진 백인 유권자가 가장 열심히 투표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인 유권자들이 뭉치면 이런 말이 쏙 들어갈 것"이라며 한인들의 지지를 부탁했다. ■스티브 황보는… 50세. 1975년 미국에 왔다. UCLA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고 자동차관련 부품 공급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19년째 라팔마에 살고 있으며 시 환경위원회 커미셔너 애너하임통합교육구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옥스포드 아카데미 재단 이사장으로 7년째 재직 중이다. 2008년 라팔마 최초의 한인후보로 시의원 선거에 나선 바 있다. 부친 황보연준 원로목사가 개척한 세리토스 장로교회에서 부부 집사로 봉직하면서 영어목회를 14년째 돕고 있다. 부인 낸시씨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0-09-01

[OC] [시의원 출마 한인에게 듣는다-3] 부에나파크 밀러 오 후보

"한인의 시정참여 물꼬를 트겠다." 부에나파크 시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밀러 오 후보는 "내가 당선되면 53년 시가 생긴 이후 백인 외엔 발도 못 붙여 온 시의회에 한인 시의원이 탄생하는 것"이라며 "개인적인 성취도 성취지만 한인을 포함한 소수계의 시정 참여를 선도한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올해 초 일찌감치 시의원 도전을 선언한 이후 부에나파크 시니어센터를 매일 방문하고 시의원들과도 매주 모임을 갖는 등 출마 전 정지작업에 공을 들여왔다. 또 매주 토요일마다 선거구를 누비며 자신을 알리고 지역 한인마켓에서 유권자등록 캠페인을 펼치는 한편 시의원 출마 결의를 담은 편지를 한인 가정들에 발송했다. 오 후보는 "첫 출마인데다 커뮤니티에 지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타인종 한인을 가리지 않고 가능하면 많은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다"면서 "덕분에 한인들에게도 알려졌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아트 브라운 시장 프레드 스미스 부시장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커뮤니티 치안 강화와 부에나파크의 경제발전을 주요 이슈로 제시하고 있다. 또 한인들을 위해 시 정부 문턱을 낮추고 한인 비즈니스와 시 당국간 교량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부에나파크의 현주소에 대해 오 후보는 "인근 시와 비교할 때 20년 정도 뒤져 있어 장기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 뒤 "특히 최근 한인 인구 및 비즈니스 증가가 눈에 띄고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도 추진 중이기 때문에 시정부와 한인을 연결할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후보에 따르면 부에나파크시는 최근 4~5년간 재개발국을 통해 비치 불러바드와 91번 프리웨이 인근 모텔들을 매입해 왔으며 이 지역을 인근 낫츠베리팜과 연계한 '엔터테인먼트존'으로 개발하려 한다. 또 5번 프리웨이와 아티샤 불러바드 인근의 주택 재개발도 검토 중이다. 특히 오렌지소프와 비치 불러바드 인근 주상복합 프로젝트와 풀러턴 한남체인 인근 쇼핑몰 개발은 각각 2억5000만달러 6000만달러의 대형개발 프로젝트로 한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 운영 경력이 있는 오 후보는 "시에 굵직한 개발 현안들이 많고 한인들의 관심도 높다"며 "내 경험을 토대로 시 발전을 위한 개발 청사진 마련에 기여하고 한인 자영업자들의 비즈니스 인허가 관련 고충 해결을 돕고 싶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내심 1등 당선을 노리고 있다는 오 후보는 "1800명에 가까운 한인 유권자들은 내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한인들의 지지를 부탁했다. 백정환 기자 baek@koreadaily.com

2010-08-25

[OC] [시의원 출마 한인에게 듣는다-2] 풀러턴 롤랜드 지 후보

"풀러턴 경제살리기에 앞장서겠습니다." 롤랜드 지 풀러턴 시의원 후보는 "최근 들어 풀러턴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다른 도시로 많이 이전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즈니스 친화적인 정책을 펼쳐 시정부와 주민들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정을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 후보는 시정부 정책이 재개발과 주택 재산세 수입에 집중돼 스몰비즈니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풀러턴시의 세입 비중 가운데 주택 재산세와 아메리지 하이츠 주택단지 등의 재개발 수입이 85%에 이르고 있어 스몰 비즈니스가 상대적으로 시 정책 수립시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는 것. 그는 또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한 장기 계획 없이는 시정부가 직면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조조정밖에 내세울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풀러턴의 스몰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기업 본사 유치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같은 현실 진단에서 비롯됐다. 기업유치로 실업률을 해소하고 소비증가를 이끌어내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과 재정부족을 겪는 시정부가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 후보는 또 풀러턴칼리지 캘스테이트풀러턴과 연계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학들이 배출할 수 있는 산학연계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이 마련되면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고 학생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지 후보가 경제공약에 중점을 두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다. "2006년부터 개발회사를 운영하며 각종 비즈니스 관련 인허가를 받다 보니 시정부가 행정 편의를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상공인들이 편하게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시의원에 출마한 겁니다." 그는 한인들을 위한 공약도 준비하고 있다. 풀러턴의 한인은 약 2만5000명. 풀러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청 경찰국 소방국 등에서 영어가 익숙치 않은 한인들이 서비스를 받기는 불편하다. 한국어를 하는 직원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시정부가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에 한국어 서비스를 추가하고 풀러턴의 자매도시인 용인과의 문화 경제 교류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지 후보는 "풀러턴의 인종 구성으로 봐도 5명 시의원 중 1명은 아시아계가 맡아야 한다"면서 "한인들이 표를 모아 준다면 시의회에 입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부탁했다. ■롤랜드 지는… 31세. UCLA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USC에서 부동산개발 석사를 마쳤다. 2004년부터 가든그로브 아리랑마켓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 ‘US Asia’의 프로퍼티 매니저를 맡았으며 지난 해 이사장직에 올랐다. 2006년부터 풀러턴의 커머셜 개발회사 ‘배니얀트리 엔터프라이즈’의 대표로 활동하는 동시에 풀러턴시 공공시설개발계획자문위원회 커미셔너로 재직 중이다. 부인 유주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백정환 기자 baek@koreadaily.com

2010-08-18

[OC] [시의원 출마 한인에게 듣는다-1] 2부에나파크 제리 공후보

"부에나파크를 젊고 풍요한 도시로 만들겠다." 11월2일 선거에서 부에나파크 시의원직에 도전하는 제리 공(29) 부에나파크 교육위원은 "부에나파크시가 생긴 이래 백인 외 타인종이 시의원에 당선된 역사가 없다"며 "발전과 변화가 더딘 부에나파크시 최초의 유색인종 시의원이 되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이어 "시의원이 되면 젊은 패기로 부에나파크를 활력에 찬 풍요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공 후보는 15년 앞을 내다보는 '부에나파크 마스터 플랜'을 계획하고 있으며 플랜의 핵심은 스몰비즈니스 활성화로 고용과 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부에나파크를 대표하는 비치불러바드 주변 상가들을 주상복합 단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상복합 건물이 많아지면 입주민들이 도보거리의 인접 상가를 이용하게 되므로 스몰비즈니스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 공 후보는 "상가가 활성화돼면 시정부 수입과 고용도 자연히 늘게 되므로 시와 주민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공 후보는 교육과 주거 환경 개선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부에나파크의 갱 관련 범죄가 주민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 수준"이라며 "교육위원으로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며 갱에 가담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갱에 연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실천안으로 "카운티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갱 범죄 방지 프로그램인 그립(GRIP)을 경찰국과 협조해 더욱 강화하겠다"며 "학생과 주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일찌감치 선거출정식을 마친 공 후보는 앞으로 우편물로 선거공약을 홍보하는 한편 가가호호를 방문해 주민들의 생생한 요구를 들어 볼 계획이다. 또 부에나파크의 모든 커피샵들을 순회하며 주민들과 대화하는 이색적인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공 후보는 최근 들어 한인 주민과 식당을 비롯한 한인업소들이 늘어나는 등 시에서 한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시의원에 당선돼 한인과 시정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맡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주 하원의원 보좌관을 지냈고 교육위원으로 재직 중인 공 후보는 "후보 수가 11명이나 돼 3000표를 넘기면 당선 안정권에 들 것으로 본다. 2300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유권자들이 도와주면 당선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제리 공 후보는… LA에서 태어나 서니힐스 고교 UC 데이비스를 졸업했으며 1999년부터 부에나파크에 거주하고 있다. 2006년부터 부에나파크 교육구 교육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선거 캠페인 캐치프레이즈로 캐롤린 레이의 시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로 정해 젊은 패기와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백정환 기자 baek@koreadaily.com

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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